메뉴 건너뛰기

해외생활

오늘:
14
어제:
249
전체:
1,934,632
조회 수 184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1998년 5월 25일(월) 가랑비 - 부모님 한국으로

 

부모님이 한국에 가시는 날이라 아침 일찍 일어나다(4시 30분). 집에서 5시 15분에 나가 공항에 6시경에 도착하다. 지난번에 예약을 확인할 때 두시간 전에 꼭 도착하도록 오라는 말에 늦지 않으려고 서두르다. Memorial Day인 휴일이라 길에 차가 별로 없어서 운전하기에 편하다. 차를 Cruise에 67Mile로 맞춰놓고 Accelerator에서 발을 떼고 가다. 도중에 경찰에게 잡혀서 Ticket을 받는 차들을 많이 보다. 평소에는 차들에 많아서 단속을 제대로 하기가 어려운데, 오늘같은 날은 길에 차가 별로 없어서 단속하기에 좋다. 빨리갈 필요가 없어서 안정되게 천천히 가니까 마음도 편하다.

 

공항에서는 8시 30분 출발이라고 VASP 항공사 직원이 6시 30분에 나온단다. 20분쯤 기다려서 좌석을 받고 짐을 부치는데, 우리는 미국 직원에게 걸려서 짐의 무게가 초과하는 것을 봐주지 않다. 37.5kg이 나가는 것을 다시 조그만 가방 하나를 더 만들어 큰 가방은 32Kg, 나머지는 아주 작은 가방으로 옮기다. 표를 받아보니 출발 시간이 10시 15분으로 되어 있다. 도착한 비행기가 늦었단다. 앞으로도 3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 탑승구인 21번 Gate 앞으로 가서 대기실에 모셔 드리고 잠시후 우리 부부는 돌아오다. 한국에서는 국제선을 타려면 줄을 길게 서서 출국 심사를 하고 면세 구역에서 기다려야 하는데, 여기서는 간단한 위험물 검사만 끝나면 바로 탑승구 앞에서 기다린다. 그러니까 출국 심사가 없는 것이다. 가지고 있던 I-94 form은 좌석을 받을 때 항공사 직원이 회수한다. 안녕히 가시라고 노인네 두분만 남기고 돌아오는데, 시원섭섭한 느낌이다. 이런저런 일로 신경질도 많이 내셨지만 두달간 같이 지내다 보니, 헤어지는 것이 어렵다. 인간은 만나면 헤어지게 되어 있고, 또한 헤어지는 것은 항상 마음이 아프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할머니와 헤어지던 기억이난다. 여름방학때 시골에 한달간 갔다가 할머니와 헤어져서 돌아갈 때는 얼마나 슬펐는지 집에 돌아가서까지 몇일을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슬픔에 대한 감정이 많이 둔화되기도 했고, 또 억지로 억제할 수 있는 제어력이 많아진 것이지 감정은 그대로인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 Garden Grove의 가주마켓을 들르다. 요즘 Sale한다고 싼 반찬들을 사오다. *** 영어 과외 보강이 아침 9시부터인데 집에 와보니 벌써 선생님이 오셨다. 30분쯤 하다가 ***가 자꾸 재채기를 하니까 토요일날 다시 보강하기로 하고 돌아가시다.

 

Shinozuka 교수와 Meeting이 있어서 아침에 학교에 오다. 앞으로의 연구 방향을 맞추기 위해 이것 저것 얘기하다 보니 2시가 다 되어 가다. 집에서 점심을 먹고 나가서 배드민턴 라켓을 사오다. 잠시 배드민턴을 치고 수영을 하다.

 

*** 책상을 창고에서 애들방으로 다시 옮기고 창고를 정리하다. 마루에 있던 성경책들과 잡다한 책들을 창고로 옮기다. ***는 이제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공부를 하려는지 의자를 편한 것으로 사달란다. 배드민턴 라켓을 사러 가는 길에 Costco에 가 보았더니 문을 닫아서, 다시 Garden Grove에 또 가보니 그곳도 문을 열지 않았다. 일단 ***가 확인을 했으니 다음에 다시 알아보기로 하다.

 

저녁 식사 전에 가족회의를 하다. 앞으로는 여기저기 어지르지 말고 각자 스스로 많은 일들을 담당하기로. 옷정리와 식사 문제 등.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