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22-23(금요일-토요일)
6시30분에 눈을 떠서 지방에 갈 준비를 하여 교회로 갔습니다. 옷은 위에는 와이셔츠와 조끼에 무스탕, 아래는 내복에 바지. 목도리와 모자, 장갑. 아파트를 나오니까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펑펑 오는 것은 아니고 싸리눈 같습니다.
마태복음15:12-20으로 Quiet Time.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더러운 것이다"는 비유를 말씀하시며 깨달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15절에서 베드로가 그것이 무슨 뜻이냐고 질문했습니다. 16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도 그것을 못 깨닫느냐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였는데 아직 예수님의 마음을 잘 몰랐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육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에 재판을 받을 때에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베드로를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셨습니다. 사람들은 제자를 키울 때 오래 참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처럼 제자가 변화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베드로가 성령을 받았을 때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기까지 하나님의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 동안에 사탄이 주는 우울함에 속지 않고, "시외거비"와 "초이르"로 전도여행을 잘 다녀올 것을 다짐했습니다.
빵과 치즈와 잼과 커피로 아침 식사를 하고, 9시 30분에 울란바타르 기차역으로 갔습니다. 교회의 지체들과 몽골에서 사역하는 다른 자매들도 같이 하여 모두 13명이 조별로 짐을 들고 역으로 갔습니다. 버스를 처음 탔습니다. 요금은 한번에 200원. 멀리가면 300원도 받고, 400원도 받고, 500원도 받습니다. 몽골사람들이 제일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것이 버스사업이라고 합니다. 12인승 봉고가 하루에 3만원을 번다고 합니다. 교사들의 월급이 6만원이니까 대단한 돈을 버는 것입니다.
남쪽으로 향해 서 있는 기차에 타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기차표에 자리의 번호가 있는데 아무데나 앉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우리의 자리에는 이미 다른 사람이 있어서 우리도 남의 자리에 앉았습니다. 양쪽 창가에 이미 현지인 여자가 한명씩 앉았었는데 그 옆으로 두명씩 자리를 했습니다. 기차는 아마도 러시아에서 만든 것 같고, 기차의 의자는 모두 마주보게 되어 있는데 창쪽으로 테이블이 있고, 접어 있는 선반을 펴면 3층으로 사람이 누울 수 있습니다. 창쪽에 있던 여자들이 2층 선반으로 자러 올라가서 1층에는 우리끼리 갔습니다.
울란바타르에서 10시 30분에 출발하여 시외거비에는 4시30분 경에 도착했습니다. 기차 요금은 일인당 2,100원인데 며칠 전에 예약을 했으므로 일인당 400원을 더 냈습니다. 예약문화가 안되어서 예약을 하는데 오히려 돈을 더 비싸게 내야 합니다. 기차 안에서는 계속 이야기를 하며 갔습니다. 먼저 '박지영'자매의 소개를 받았습니다. 한동대학 소속인데 "재정경제대학"에 파견 나와 있습니다. UNICEF에서 지원하는 그곳의 MBA과정 운영을 한동대학에서 맡았습니다. 한동대학에서 여름방학에 교수들이 와서 영어로 강의합니다. 지영자매는 한동대학 1회 졸업생으로 단기선교도 몇 번 다녀온 것 같습니다. 옆에는 '전경'자매가 앉았습니다. 광주 출신인데 병원선교선을 타는 간호사입니다. 배가 겨울에는 출항을 안 하니까 3개월 휴가 중에 선교지 탐방차 미래학교에 와 있습니다. 앞에 앉은 조장섭목사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몽골의 실정에 대한 것과 경제, 산업 등. 국가 예산은 항상 적자예산인데 모자라는 것은 원조로 채운다고 합니다. 미국과 캐나다와 일본 등. 얼마 전에 김대중대통령이 다녀갔는데 몽골이 시끄러웠답니다. 요란스럽게 다녀가고 200만불을 주고 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 수상이 와서 조용히 있다가 갔는데 2000만불을 내놓았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수시로 수천만불씩 준다고 합니다. 어떤 때는 거금을 줄테니까 고비사막의 한 도를 20년간 개발할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는 조건을 내세웠습니다. 몽골정부에서는 처음에는 그들의 땅을 안 내주려고 했는데, 요즘에는 지원을 하도 많이 해주니까 땅을 주어도 되지 않겠느냐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선경에서 아날로그 휴대폰을 원조해주었는데 여기서는 디지털을 안 준다고 불만이랍니다. 내년에는 디지털을 주겠다고 했는데,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내년이면 디지털에서 IMT로 넘어갈 것입니다.
도중에 경찰의 검문을 받았습니다. 자기신분도 밝히지 않고 패스포트를 보여달라고 합니다. 상의의 단추도 열어놓고, 아주 불량한 태도였습니다. 2층에서 자고 있는 지영자매를 빼고 우리 세명의 여권을 주었더니 전경자매의 비자를 가지고 시비를 겁니다. 비자에 있는 체류기간이 30일인데 비자발급일이 11월 22일 이전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30일이 지났으니까 기간이 지난 것 아니냐고 트집을 잡습니다. 조목사님이 몽골어로 유창하게 따졌습니다. 체류기간 산정은 입국일부터 하는 것인데 12월 7일날 들어왔으니까 1월 7일까지 아직 여유가 있는 것이라고 큰소리로 말하니까 여권을 팽개치고 그냥 가버립니다. 외국인들이 지방 여행을 할 때는 많은 곤란을 겪는다고 합니다. 괜히 트집을 잡아 벌금을 매겨서 자기가 가지려고... 몽골에서 바람직한 산업이라고는 관광수입밖에 없는데 경찰들의 그런 태도 때문에 외국 관광객들이 잘 안 온다고 합니다. 내릴 때가 다 되어서는 어느 술취한 사람이 와서 우리들에게 악수를 청하고 주정을 합니다. 자기가 비록 술취하기는 했지만 몽골은 좋은 나라이니까 그렇게 알라고 말합니다. 옆에서 친구들이 미안하다고 하며 데리고 갑니다.
"시외거비"에 내리고 보니 역사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정류장에 담도 없습니다. 기차에서 내려 계단을 내려가니까 택시들이 서 있습니다. 서있는 3대의 택시에 우리 13명이 나눠 탔습니다. 내가 탄 차는 짚차인데 앞좌석에 나와 이성근선교사가 타고, 뒷자리에 4명이 꾸겨서 탔습니다. 우리나라 읍 정도 되는 마을인데 "투멘카르잘" 가족이 사는 집으로 가자고 하니까 알고 있었습니다. 차로 10분 정도이고 요금은 일인당 500원. 주로 아파트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마을에 몽골의 전통 가옥인 "게르"는 딱 한집밖에 없었습니다. 아주 조그만 게르인데 부부와 11살난 딸(앙설런트, 4학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석탄 광부인데 밤 7시에 출근해서 아침 8시에 돌아온다고 합니다. 게르는 원룸인데 가운데가 트여 있습니다. 한쪽에 부부의 침대가 있고 맞은편에 딸의 침대가 있습니다. 입구에서 바라보는 정면에는 우리나라의 반다지 같은 것이 있고 그 위에 액자들을 얹어놓았습니다. 라마불교의 의식을 지내는 향로 같은 것도 있었습니다. 게르의 입구는 이글루의 입구처럼 되어 있는데 나무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입구의 문을 열자 양고기를 잡은 것이 매달려 있습니다. 그렇게 게르 밖에 내놓으면 겨울에는 저절로 냉동이 됩니다. 밖의 온도가 영하 20도에서 40도까지 되니까...
게르 안에 들어가서 일단 우리가 온 목적에 대해 이야기하고 찬송과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창조과학세미나가 있으니까 동네의 다른 사람을 초청하자고 말하고 우리 팀에서 현지인 교인과 목사님 사모님이 간단한 전도를 하러 갔습니다. 아파트 문마다 두드리며 잠시 후에 창조과학 세미나가 있으니까 게르로 모여달라고. 어느 집에서는 5학년 짜리 남자아이를 한명 보냈습니다. 몽골 사람들이 거절을 잘 못하는 심성 때문에 잠시 후에 오겠다고 모두들 말은 했다는데, 나중에 세미나가 한참 진행될 때 젊은이 두명이 더 왔다가 끝나기 전에 간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시골 사는 아주머니한테 창조과학을 어떻게 전할까 걱정이었는데 그 아주머니는 대학을 나오고 기술학교계통에서 교사를 한 경력이 있다고 합니다. 남편은 출근하러 나갔고, 아주머니와 딸과 꼬마 남자아이를 대상으로 세미나를 시작했습니다. OHP 기계는 우리가 가지고 갔고, 스크린은 그 집에서 꺼내주는 광목을 사용하니까 훌륭했습니다.
"진화론과 현대과학"을 이야기하고 후반부에 "생명의 신비"에 대해 말했습니다. 처음에 강의를 시작할 때 사람이 누구로부터 나왔냐고 하니까 딸이 "어머니로부터 나왔다"고 대답합니다. 조상을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누구냐고 하니까 원숭이라고 합니다. 강연 도중에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딸이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를 나으면 사람을 나을 것이라고... 그런데 그 자녀에 자녀에 자녀에 자녀가 계속해서 자녀를 낳아가면 사람이 아닌 다른 동물이 나올 수 있겠느냐고... 그랬더니 그럴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원숭이가 계속해서 자식을 낳다보면 사람을 낳을 수 없지 않느냐고 했더니 긍정을 합니다. 생명의 신비를 이야기하며 동물들의 그런 신비로운 능력이 어디로부터 왔을까 라고 질문을 하니까 남자아이가 말하기를 그 부모로부터 왔다고 합니다. 그럼 처음의 부모는 누가 만들었냐고 하니까 하나님이 만드셨다는 대답을 합니다. 그 이후에 복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태어났다가 죽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말하니까 남자아이의 말이 "있었다"고 합니다. 누구냐고 하니까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똑똑하다고 말하고 예수님에 대해 말했습니다. 또 남자아이가 하는 말이 "자살한 사람은 지옥에 간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천국과 지옥에 대해 조금 자세히 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구원에 대해서도 말해주고 이 시간에 예수님을 영접하기를 원한다면 "아멘이라고 대답하십시오" 하니까 아주머니와 딸과 남자아이가 모두 "아멘"으로 답했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를 "초이르"로 태우고 갈 자동차 기사가 와 있었습니다. 그 기사도 강연의 대부분을 들었습니다. 조목사님이 나와서 영접기도를 하고 강연을 마쳤습니다. 그곳 게르의 아주머니 투멘자르갈의 여동생이 시외거비에서 초이르로 이사갔는데 거기서 영어교사를 한다고 합니다. 주소와 전화번호를 주어서 받았습니다. 그 여동생은 1년전에 단기선교팀이 와서 전도했을 때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합니다.
조목사님과 나와 이선교사님과 통역을 해 줄 다래와 전경자매가 "초이로"로 떠나고 나머지는 남아서 그 아주머니와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게르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거기서 몽골 전통으로 저녁을 얻어먹고 1시경에 시외거비에서 기차를 탔습니다.
우리는 8시에 시외거비를 떠나 초이르에 도착하니 9시가 조금 넘었습니다. 차비는 만오천원으로 정했답니다. "거비"(GOBI)는 몽골어로 사막이라는 뜻입니다. 길도 잘 없는 사막을 그 기사는 운전을 잘 해갑니다. 짚차의 앞에 둘이 앉아서 엉덩이를 반쪽만 의자에 걸치고 가니 불편했습니다. 차가 덜컹거리는 것이 마치 말을 타고 광야를 달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옛날 징기스칸이 말을 타고 광야를 달리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초이르에서도 사람이름 하나 가지고 집을 찾습니다. 몽골에는 기차가 남북으로밖에 다니지 않습니다. 철도의 노선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울란바타르에서 몽골 남부 경계의 중간을 조금 더 가면 초이르가 있는데, 거기서 몽골의 동쪽까지 기차 선로 공사계획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삼성에서 레일과 광케이블 공사를 맡았다고 합니다. 공사가 마치고 나면 초이르는 중요한 교통도시가 될 것입니다. 초이르에는 1년 전과 6개월 전에 단기선교팀이 왔다가 만난 "념기력"이라는 영어교사가 있습니다. 시외거비에서 전도하고 다니다가 경찰에게 붙들려 초이르까지 끌려왔을 때 그 교사가 통역을 해 주었답니다. 여행증이 없다고 잡혀서 벌금을 물라고 하는데 념기력이 말을 잘 해주어서 무사히 나오며 경찰과 사진도 찍었다고 합니다. 그 집을 찾아가는데 우선 투멘자르갈의 여동생 집으로 갔습니다. 그 여동생이 념기력과 같이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이었습니다. 기꺼이 우리 차를 같이 다고 그 사람 집까지 같이 갔습니다. 처음에 그 여동생의 집 문을 두드리는데 한참동안 나오지 않아 밖에 잠시 내렸습니다. 하늘에 별들이 굉장히 많은데 오리온별자리가 선명하게 보입니다. 오리온 장군의 허리인 삼태성 뿐 아니라 활의 모양과 다리의 모양이 아주 선명합니다. 역시 오리온자리는 겨울철 초저녁에 제일 먼저 볼 수 있었습니다. 밖은 대단히 추웠습니다. 영하 35도 정도 된다고 합니다. 밖에서 5분도 서있지 않은 것 같은데 무릎 아래가 냉동된 것 같았습니다. 내복을 안 입고 왔다면 큰일날 뻔 했습니다. 자매들은 차안에서 기다리는데도 추워서 덜덜 떨고 있습니다. 겨울에 몽골에 와보지 않은 사람은 과연 몽골을 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같이 차를 타고 념기력의 집으로 갔는데 계단에 불이 없었습니다. 안내해준 교사의 조그만 손전등에 의지하여 거의 장님처럼 5층을 올라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념기력 부부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로 낮선 사람을 맞았습니다. 이선교사가 사연을 이야기했습니다. 6개월 전에 다녀갔던 사람들의 소개로 오게 되었다고. {울란바타르에서 비전정보문화센타를 운영하는데 컴퓨터와 영어를 가르친다. 그런데 이곳 초이르가 발전하는 도시니까 이곳에 지점을 세우려고 한다. 그런데 당신은 영어교사니까 같이 협력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찾아왔다. 그리고 나는 한국에서 온 교수인데 공학박사이고 창조과학세미나를 강연하고 있다. 원한다면 당신부부를 위해서 강연을 해 주겠다.}고 말하니까 기꺼이 천을 가져와 스크린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념기력은 영어교사인데 남편은 그 학교의 수위라고 합니다. 여기 사람들은 여자의 학벌이 높고 남자의 학벌이 없는 것이 별 문제가 아니라고 합니다. 한 예로 몽골국립대학을 나오고 한국에서 석사과정을 한 여자가 있었는데, 한국으로 온 몽골 기술자와 결혼을 했답니다.
우리를 데려다 준 차가 기다리고 있다가 초이르역까지 데려다 주고 다시 시외거비로 돌아가야 하니까 시간이 별로 없어서 "진화론과 현대과학" 한가지만 하기로 했습니다. 10시 30분에 시작했는데 11시가 조금 넘어서 급하게 끝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나니까 자기도 사람이 원숭이에서 진화된 것으로 믿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람과 같이 고등한 동물이 진화되었을 리가 없다고. 돌아가면서 영어로 그 사람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대답도 영어로 하는데 다음에 오게 되거든 미리 전화연락을 하면 손님 맞을 준비를 하겠답니다. 오늘은 갑자기 찾아와서 제대로 대접을 하지 못했다고 미안하다고. 다른 사람들은 몽골어로 작별인사를 하고 나는 "see you again" 하니까 부인도 "see you later" 하는데 남편은 "see you tomorrow"라고 합니다.
짚차를 다시 타고 우리를 안내한 여자교사를 자기 집에 내려주고 우리는 초이르 역으로. 12시가 조금 못 되었는데 우리가 타고 갈 차는 2시에 떠납니다. 안내한 영어교사는 1년전쯤 단기선교팀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믿음이 깊어진 것 같다고 합니다. 내가 세미나를 진행하는 동안 같이 간 현지인 청년이 우리가 타고 다닌 짚차의 기사에게 전도를 했는지, 짚차가 초이르 역 앞에 도착했을 때 그가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차안에서 그를 위한 통성기도와 조목사님의 영접기도를 끝으로 우리는 내리고 그는 자기집이 있는 시외거비로 돌아갔습니다.
초이르 역에 들어가니까 여러 명의 남녀가 음악을 틀어놓고 둘씩 짝을 지어 댄스를 하고 있습니다. 마치 소련사람들의 춤 같았습니다. 한 곡이 끝나니까 한 사람이 테크노 댄스를 추기도 했습니다. 남녀가 어울려 아주 재미있게 노는 모습이었습니다. 차를 기다리는 손님인 줄 알았더니 조금 지나니까 모두들 옆문으로 들어갑니다. 알고 보니까 역사의 옆쪽에서 공사를 하는 인부들이 쉬는 시간에 놀던 것이었습니다. 달래자매와 전경자매는 피곤한지 의자에 앉아서 잠을 자고, 남자들은 이야기를 나누며 기다렸습니다. 1시쯤 되니까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 시작합니다. 초이르에서 울란바타르로 돌아가는 요금은 1,900원. 2시가 되어 차가 오니까 사람들이 기차문 앞으로 우르르 몰려드는데 질서는 하나도 없습니다. 내리는 사람이 제대로 내리지도 못하고 사람들이 막 올라갑니다. 자리를 잘 잡아야 몇 시간을 편하게 가니까... 우리도 겨우 밀치고 올라가니 시외거비에서 미리 탄 팀들이 우리 자리를 맡아놓았습니다. 나는 일행 중 제일 연장자라고 현지인이 3층 자리를 마련해 주어서 침대처럼 누워서 왔습니다. 몽골은 토요일도 휴무인데 토요일 새벽기차에 사람이 매우 많았습니다.
2시부터 5시까지는 잘 잤습니다. 그 다음에는 배가 살살 아픈 것이 화장실을 꼭 가야할 것 같은데 최대한 참았습니다. 6시에는 도저히 안될 것 같아서 3층에서 내려와 이선교사님과 함께 화장실에 갔습니다. 화장실은 객차 한 칸에 하나밖에 없습니다. 마침 안에 있던 사람이 나와서 내가 먼저 들어가 볼일을 보았습니다. 앞의 사람들이 변기 위에 발을 디디고 올라앉은 흔적이 있습니다. 청소를 말끔히 하고 되도록 빨리 볼일을 보고 나왔습니다. 그 다음에는 이선교사님 차례. 무척 오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도중에 사람들이 자리에서 나와서 화장실 문 앞을 지키고 있는 내게 묻습니다. 아마도 안에 사람이 있느냐고 묻는 것 같은데 몽골어를 알 수 없으니 손짓으로 사람이 있다고 가리켰습니다. 다시 자리에 돌아와 차가 울란바타르에 도착할 때까지 3층에 있었습니다. 7시 40분에 역에 도착. 드디어 집으로 갈 수 있습니다. 같은 방향 사람끼리 차를 나누어 타고 집으로... 비로소 내집에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선교사님이 아침식사를 준비할 동안 샤워를 하고 세탁물을 내놓았습니다. 세탁기를 한번 돌리기로 했습니다. 아침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밥이 질게 되었는데 내 입맛에는 잘 맞습니다. 김에 오뎅찌게에 버섯 등 좋은 아침이었습니다. 설거지는 내가 하고, 미국에서 온 선교팀이 주고 갔다는 FOLGERS 커피를 타 먹었습니다.
목욕을 하는 동안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었다고 합니다. KAL에서 연락이 왔는데 요즈음 이곳 근처에 분진이 많아서 비행기가 취소되었다고 하며 이곳의 KAL 지점에 문의하면 대체 방법을 알려줄 것이라고 합니다. 목욕 후에 KAL 지점장에게 전화를 걸어 의논을 했습니다. 29일에 한국으로 바로 가는 MIAT(몽골 비행기)를 타기로 했습니다. KAL과 MIAT 사이에 40석을 주고받기로 협약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박ㅈㅈ사장으로부터 안부전화를 받았습니다. 지방에는 잘 다녀왔느냐고... 목요일날은 강연을 잘 듣고 갔다고 하며 구약성경을 읽은 적이 없는데 성경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27일의 저녁 약속에 대해 다시 한번 확인하고 통화를 마쳤습니다.
점심은 생략하고 1시쯤 교회로 갔습니다. 토요일 오후 2시부터 교회 어린이예배 시간인데 오늘은 성탄 축하잔치를 하니까 아이들이 친구를 데리고 온다고 합니다. 의자를 모두 앞을 향해 배열했고, 앞벽에는 성탄축하 그림들을 붙여놓았습니다. 그리고 영어로 "Merry Christmas"라는 글도...
원래 교회를 다니는 아이들이 먼저 와서 일부는 연습을 하고, 예배가 시작되니까 중간에 친구들이 찾아옵니다. 처음에는 35명쯤 되더니 후반부에 가니까 50명 정도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올만한 숫자를 예상해서 선물로 줄 사탕과 과일을 준비했는데 아이들이 많이 오니까 앞의 가게에 있는 사탕을 모두 쓸어왔는데도 결국에는 사탕이 모자라서 사모님이 아는 아이들은 나중에 주기로 하고 그냥 돌려보냈습니다. 이곳 역시 예배실 옆에는 외투를 걸 수 있는 나무걸이들이 많이 있었고, 아이들의 외투 역시 목 뒷부분에 고리가 있었습니다. 다음에 몽골에 올 때는 무스탕에 고리를 만들어 와야 될 것 같습니다.
기도와 찬양이 있었고, 연극은 고등학생과 대학생으로 구성된 교사들이 준비했습니다. 나무 세그루 중에서 다른 두 나무는 목수들이 사용하기 위해 베어갔는데 한 나무는 별로 쓸모가 없어서 남아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찾아와 "기도를 해봐라" 그래서 자기도 "쓸모 있게 사용되고 싶다"고 기도를 했는데 목수가 오더니 말구유로 써야겠다고 자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깐은 실망을 했지만 결국에는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누우신 구유로 사용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부활절 행사 때에는 아이들이 성경책을 읽고 스스로 극본을 쓰고 자기들이 연출해서 연극을 했답니다.
공연 후에는 간단한 레크레이션이 있었습니다. 4시쯤 모든 순서를 마치고 아이들이 돌아간 다음에 목사님과 사모님과 모든 교사들이 같이 청소를 하고 내일 아침에 드릴 어른 예배를 위해 자리배치를 했습니다. 교사들이 모여 기도회를 마친 후 수고했다고 제가 만두를 샀습니다. 바로 옆에 "보오츠"(만두) 가게가 있습니다. 각자가 먹고싶은 만큼 신청하고 음료수는 몽골과 독일이 합작으로 개발한 비타민음료를 마셨습니다. 나는 우유로 만든 "수태차"라는 것을 더 시켜서 맛보고...
몽골의 문화를 맛보기 위해 극장으로 갔습니다. 극장의 이름은 모르겠고 영화의 제목도 모르겠습니다. 언어를 모르니 이선교사님이 안내하는 대로 따라만 다닙니다. 극장은 우리나라의 요즘 극장 시스템 같은데, 한 건물에 상영관마다 주인이 다릅니다. 6시에 시작하는 슬픈 영화의 표를 사고(1인당 1,500원), 시간이 30분 남아서 근처의 카페에 들어갔습니다(카푸치노 커피 500원). 몽골에서는 수준이 있는 가게 같았습니다. 실내를 장식한 분위기도 서양의 스타일이고 사람들도 우아하게 식사를 즐기는 것 같습니다. 크게 두 칸으로 되어 있는데 안쪽의 둥그런 큰 테이블에는 성장을 차려입은 어린이 손님이 많이 있고 어른은 한명 따라왔습니다. 그 학부모가 어린이들을 위한 잔치를 열어주는 것 같은데 케잌도 있고 음료수도 비싼 음료수를 마시는 것 같았습니다. 드레스 같은 것을 차려입은 것이 꽤 부유층의 아이들 같습니다. 시간이 되어 극장으로 돌아오니 싼타 복장을 한 어른이 선물주머니를 들고 나타나고, 그 뒤에는 흰 드레스를 예쁘게 차려입은 여자 어린아이 둘이 따라옵니다.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 옆의 홀에서 무슨 공연을 하는 듯한 무대를 준비하고 있는데 그리로 들어갑니다. 몽골에는 기독교인이 별로 없는데 성탄절의 형식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는 상관없이 호텔의 음식점에도 크리스마스 추리가 장식되어 있고, 가게 어느 집에 가나 보통 하는 성탄절 장식을 해 놓았습니다. 아까 갔던 만두집에도 장식이 되어 있고, 첫날 갔던 한국음식집도 주인이 기독교인이 아닌데 추리 장식이 되어 있고, 견학 갔던 은행도 그렇습니다. 은행 직원들은 모두가 싼타 모자를 쓰고 있었습니다.
슬픈 영화를 보러 상영관 앞에 가니 문이 닫혀있어서 매표소에 물어보니 7시부터 시작한답니다. 아마도 사람이 별로 모이지 않아서 임의로 시간을 변경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 지금 시작하는 웃기는 영화로 바꾸겠다고 하니까 표를 바꾸어 주지 않습니다. 주인이 다르니까 다른 표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고. 결국에는 표를 물러주어서 현금을 내고 옆의 상영관으로 들어갔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군대에 가게된 청년이 애인 때문에 고민하다가 군대에 잘 들어가서 훌륭하게 복무를 마친다는 이야기인데 극의 구성 등이 우리나라 50년대 수준이었습니다. 상영 시간은 1시간 20분 정도. 나올 때 보니까 영사기를 돌린 것이 아니라 LCD로 비춘 것이었습니다.
바로 집으로 돌아와 내일 입을 옷을 준비하고 정리. 9시쯤 식사를 했는데 차리는 것은 집주인이 하고 설거지는 제가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