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1.07 00:25

로버트 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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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보일

화학의 아버지 (1627-1691)

 

물질.공기 신비 과학적으로 규명

화학 의학서 분리 ... 실험과학 선구자로 우뚝

어려서부터 남다른 재능 ... 성경 원어로 읽어

 

  {하나님께서 바람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정하시며}(욥 28:25).

  바람에도 무게가 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은 지금부터 겨우 3백여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금부터 약 4천여년 전에 쓰여진 성경의 욥기서에는 하나님께서 바람의 무게를 정하셨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세상의 물질은 흙과 공기, 불 그리고 물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했다. 이것을 4원소설이라고 한다. 물론 이것은 오늘날의 과학으로 보면 맞지 않는 이론이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은 그의 생각을 아무런 의심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 왔다. 그런가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과 다른 생각을 지닌 학자들도 물론 있었다. 데모크리토스라는 고대 과학자는 물질은 매우 작은 고체 알맹이로부터 시작된다고 지금의 원자론과 매우 비슷한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17세기에 와서도 많은 사람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그대로 인정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당시 이 이론에 의심을 가지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부정하던 데모크리토스의 이론에 관심을 가진 한 젊은이가 있었다. 그가 바로 오늘날 우리들이 지닌 물질에 대한 기본 생각과 공기의 성질에 관한 신비를 과학적으로 밝혀낸 '화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로버트 보일(1627-1691)이다.

  오늘날 화학의 아버지라고 칭송을 받는 인물은 여러명이 있다. 산소를 발견했던 프랑스의 라부아지에(1743-1794)는 프랑스 혁명의 불길로 인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또 다른 동시대의 산소 발견자인 프리스틀리(1733-1804)는 영국인으로, 목사였으며 최초의 청량음료도 만들었다. 그리고 영국의 돌턴(1766-1844)은 원자론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이들보다 1백여년 앞서 태어나 화학을 의학에서 따로 떼어내 새로운 학문으로 독립시켰으며, 오늘날 실험과학의 기초를 닦은 보일을 진정한 화학의 아버지라고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더욱이 보일은 끈질긴 관찰에 의한 실험과학의 선구자답게 신앙에 있어서도 유별난 열심을 가졌던 인물이었다.

  로버트 보일은 아일랜드 리스모아 성의 오랜 귀족 집안의 열 네번째 자녀였으며, 사내아이로는 일곱번째로 태어났다. 아버지 리처드 보일은 백작이자 대법관으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은 인물이면서 청교도적 삶을 산 사람이었다. 청교도적 신앙을 지닌 남부러울 것 없는 가정에서 자란 보일은 어린시절부터 일찌감치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로버트는 정말로 큰 일을 해 낼 아이야. 어린것이 여섯 나라 말을 할 줄 알다니 ..."

  "벌써 성경을 원어로 읽는답니다. 위대한 신학자가 될지도 몰라요"

  보일은 12살 때 이미 영어 뿐 아니라 프랑스어와 라틴어, 수학에도 능통하였으며, 희랍어, 시리아어 그리고 구약성경을 기록한 유대인들이 쓰는 히브리어를 공부하여 성경을 원어로 읽기 시작했다.

 

"과학은 신앙위한 학교" 소신

매일 아침 성경봉독 생활화 ... 선교사업 지원

창조섭리에 대한 호기심, 10대 때부터 여행

 

  그의 성경을 읽는 습관은 이때부터 시작해서 그의 생애를 통하여 매일 아침마다 계속되었다고 전해진다.

  여덟살 되던 해 보일은 지금도 영국에서 유명한 '이튼학교'에 들어갔다. 많은 영국의 지도자들이 바로 이 학교 출신으로 당시에는 귀족의 자녀들만이 다닐 수 있는 학교였다. 그렇지만 집안이 여유가 있었던 보일은 이 외에도 남들이 경험할 수 없는 여러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열한살 때 가정교사와 함께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하였는가 하면, 열네살때에는 혼자 이탈리아를 여행하였으며 이튼학교를 졸업하고 스물한살이 되어서는 6년간 네덜란드와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에 유학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부유한 그의 환경과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그의 호기심 때문이기도 하였다.

  "과학은 오히려 신앙을 위한 훌륭한 학교와도 같습니다"

  그는 훗날 이렇게 과학에 대한 자기의 입장을 밝히기도 하였다. 그러한 그의 신앙과 학문에 대한 욕심은 결혼도 잊은 채 평생동안 계속되었다.

  1644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보일은 많은 유산을 받게 되었다.

  "고향 아일랜드에 우선 성경을 많이 보내자"

  그가 기도하며 결정한 일은 먼저 성경을 고향에 보급하는 일이었으며 여러 선교사업에 헌금도 많이 내놓았다. 그리고는 1654년, 드디어 영국 옥스포드에 연구를 위한 실험실을 하나 만들었다. 위대한 실험과학자 보일의 연구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유럽에는 연금술이 크게 유행하고 있었다. 연금술은 원래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된 것인데 연금술사들은 여러 물질을 한데 섞어 끓이다 보면 혹시 귀중한 불로장생의 약이나 신비한 물질이 어쩌다 나올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이 연금술이 16세기에 와서 유럽에서 다시 크게 유행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철이나 구리, 납 등과 같은 흔한 금속들을 섞어서는 금이나 은 같은 귀금속을 만들어 어떻게 큰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많은 연금술사들이 무모할 정도로 여러 실험을 계속하고 있었다.

  "연금술은 하나님의 창조원리에 맞지 않는 일이다"

  성경에 해박한 보일은 이 연금술을 믿지 않았다.

  보일은 엄밀한 과학적 방법만이 물질의 원리를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보일은 자연과 자연과학을 하나님과 동등시하던 당시의 범신론적이고도 이교도적인 풍조에 청교도인으로서 창조주 하나님과 하나님이 주신 자연의 규칙은 엄밀히 구별되어야 함을 외친 사람이었다.

 

철저한 실험정신 ... '보일법칙 발견'

"온도 일정하면 기체의 부피는 압력에 반비례"

동물 방광 . 수은관 등 다양한 연구 통해 입증

 

  1669년 어느 날 독일의 연금술사 헤니히 브란트는 다른 연금술사들과 마찬가지로 신비한 물질을 찾기 위해서 실험실에서 화로에 불을 피워 놓고는 어떤 액체를 증류기에 넣고 그것을 오랫동안 증발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증류기 아래에 하얀 풀 모양의 어떤 것이 남아 있었는데 땅거미가 지고 방이 어두워지자 그것이 신기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도대체 이것이 무얼까?"

  브란트는 남아 있던 액체 속에서 이 이상한 침전물을 끄집어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놀랍게도 거기서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 물질이 커다란 돈벌이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는 이 신비한 물질을 자랑하기 위하여 바다를 건너 영국의 찰스 2세에게 갖고 왔다. 찰스 2세는 과학과 학문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브란트는 찰스 2세에게 이 물질의 근원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보일선생, 이 물질이 과연 무엇일까요. 브란트는 단지 우리 몸 안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만 하는군요."

  찰스 2세는 당시 함께 과학자 모임을 이끌던 보일에게 이 물질이 무엇인지 밝혀달라고 요청하였다.

  별다른 사전 정보도 없이 부탁을 받은 보일은 철저한 실험을 통하여 마침내 이 물질이 무엇인지 밝혀내게 된다.

  그것은 우리의 소변 안에 섞여 있는 물질 가운데 하나인 백린이라는 물질이었다.

  별다른 암시도 없이 실험과 관찰에 의하여 이것을 밝혀낸 보일은 정말 뛰어난 과학자였다.

  그가 '근대 화학의 아버지'로 찬양을 받게 된 것은 바로 이와 같이 물질의 분석에 있어서 실험과 관찰, 그리고 철저한 과학적 방법을 추구한 때문이었다.

  이외에도 잘 알려진 보일의 업적 가운데는 우리들이 중학교에 들어가면 바로 배우게 되는 과학의 여러 법칙 중 하나인 '보일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온도가 일정하면 기체의 부피는 압력에 반비례한다}

  그는 동물의 방광을 오늘날의 풍선처럼 만들어서 종 모양으로 된 단지 안에 넣고는 진공 펌프를 만들어서 공기를 밖으로 뺄 수 있는 장치를 하였다.

  그랬더니 진공 펌프에 의하여 압력을 줄이면 방광 주머니는 부풀어오르고 공기를 넣으면 반대로 주머니가 줄어드는 것이었다.

  이밖에도 그는 J자 모양의 관에 수은을 이용하여 또 다른 방법으로 압력과 부피의 관계를 실험하였다. 그리고 공기가 불이 타는 데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생물들에게는 무슨 영향을 주는지 알아보는 등 여러 가지 다양한 실험을 하였다.

  공기가 소리를 전하는 매체이며 공기가 없으면 소리를 들을 수 없으며 동물도 숨을 쉬지 못한다는 사실도 그가 최초로 발견하였다.

 

남모르는 선행 ... 신앙생활도 "우뚝"

매일 성경 읽기 . 강습소 세워 기독교 열심 옹호

창조세계의 질서 . 아름다움 규명에 평생 헌신

 

  화학의 아버지 보일은 오늘날 근대과학을 탄생시킨 '과학적 방법의 선구자'로 불리고 있다.

  "원소는 본래 단순한 것이다. 이것은 불순불이 전혀 없는 것이며 다른 물질로부터 만들어지거나 서로 바꾸어도 만들 수 없는 것이다."

  1661년 보일이 출판한 '의심 많은 화학자'라는 책에 기록된 이 말은 연금술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있으며 물질의 근원이 무엇인지 잘 모르던 당시의 사람들에게 물질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을 정확히 알려주는 놀라운 과학적 선언이었다.

  이것은 훗날 또 다른 영국의 유명한 크리스천 과학자 돌턴에 의하여 원자론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렇게 보일은 근대과학의 출발에 귀중한 역할을 한 과학자였다.

  그러나 보일은 이외에도 남모르는 선행을 일평생 실천하며 경건한 신앙인으로서 삶을 실천한 사람이었다.

  당시 영국에는 '보이지 않는 대학'이라는 모임이 있었다. 이곳은 유명한 학자들이 함께 모여 여러가지 토론도 하고 연구도 하며 사귀는 그런 모임이었다.

  이 모임은 1662년 찰스 2세에 의하여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영국의 유명한 왕립협회로 발전하였는데 이곳의 회원 중에는 보일의 조수로 현대물리학의 개척자였던 로버트 훅크와 유명한 뉴턴도 있었다.

  보일은 뉴턴보다 열다섯 살이나 위였는데, 돈이 없던 뉴턴이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라는 유명한 만유인력의 법칙을 설명할 책을 낼 때 선뜻 그 비용을 감당할 만큼 정이 많고 너그러운 마음의 소유자였다.

  더욱이 그의 신앙에 관한 열심은 매우 유별나서 앞에서도 밝혔듯이 하루도 성경 읽기를 거르는 날이 없었으며, 성경을 직접 번역하였고 기독교 신앙을 옹호하기 위한 '보일 강습소'를 세울 정도로 열심이었다.

  이외에도 보일은 신학적 통찰력을 보여 주는 다음과 같은 언급도 한 적이 있다.

  "사람은 하나님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질문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느냐고 질문해야만 합니다."

  이렇게 과학자이면서도 생각이 깊은 마음의 사람이었던 보일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주신 창조세계의 질서와 아름다움을 밝혀보고자 혼신의 노력을 다한 사람이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결코 보일은 그것 때문에 자만하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그것을 조금도 방탕하게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를 절제하며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값지게 사용할 줄 안 사람이었다.

  이와 같이 평생을 청교도적인 삶을 실천한 보일은 1691년이 저물어 가는 12월 30일 예순다섯 살의 나이로 빛나는 삶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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